靑色弱

BGM - 하엘님(@HaL_commission) 커미션 / 밀리온 2차 테마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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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본, 로그에는 살해 정황, 유혈의 묘사가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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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pengpeng_bak 커미션

 

※오너는 캐릭터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서술되어있는, 모든 행위는 범죄 행위임을 인지하고 있으며 현실과 커뮤의 일을 분리해서 판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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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혹은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빛이 아스라이 침전했다. 화려의 장 안에 투박한 것은 질서의 미덕을 해치는 법이라, 상단의 창고는 언제나 지하에 숨겨지듯 자리했다. 창 하나 낼 수 없는 공간은 암흑이 잠식했으나 치밀하게도 조잡하게 짜인 천장의, 혹은 위층 바닥의 판자 틈새로 희미한 달빛이 어스레히 비춰왔다. 그 정도 빛으로도 인영은 정체를 알릴 수 있었으므로 밝다, 감히 말할 수 있었다.

 

 밀리온은 구두 끝을 내려다보았다. 값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선택받은 삼나무 판자는 빛 비추는 곳곳이 암적으로 물들어 있었다. 밀리온은 빛의 경계선에 구두의 앞코를 가져다 대었다. 정지한다. 이내 경계선이 멀어지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오래된 목재가 비명 하듯 삐걱거리면 뒤를 돌았다.

 

 

얼마나 대단한 것을 상의하려고 이런 시간에 이런 곳으로 불렀지?

 

 

 레온은 밀리온을 의심하지 않는다. 밀리온이 블리쉬를 거스를 가능성은 영零에 수렴한다 여긴다. 둘은 말판 위에 놓인 말이고, 동등한 것은 서로에게 덤벼들 수 없음을 아는 덕이다. 들어오고 나가는 흐름이 부족한 공간은 산소가 부족하다. 레온은 입도 가리지 않고 하품했다. 여유로움을 숨기지 않았다.

 

 

아하하.

 

 

 밀리온은 애써 웃었으나 입꼬리조차 끌어올리지 않았다. 레온이 건방진 여유를 떠는 만큼 밀리온은 기쁨을 느꼈다. 느낀다고 생각했다. 밀리온은 허리춤에 둘러 걸쳐둔 것을 만졌다. 날붙이는 치장할수록 허울에 가깝고 투박할수록 존재 의의에 가까웠으므로 그것은 제 몸에 지닌 것 중 가장 투박함이 틀림없었다. 무얼 상의하려 했냐면. 소리 없이 몸을 드러낸 것에 희미한 빛이 반사된다. 레온의 눈에 비친다. 어디에서 들어온 빛인가, 깨달을 때는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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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쉬는 백금과 초록이 결합한 결실이다. 헤르안의 집무실은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어느 구석을 보아도 수려한 백금과 초록으로 치장되었다. 밀리온은 공간의 유일한 파랑이었고, 중앙에 선 이질적인 것은 텃세를 받았다. 너도 알겠지만. 초록의 시선이 작렬한다. 기실 그곳에 눈은 합쳐서 넷뿐이고, 헤르안은 밀리온 대신 손에 쥔 서류에 관심을 주었으나 밀리온은 그렇게 느꼈다.

 

 

수입이 줄었다.

 

 

 다들 살만한가 보지. 보석이 유행한다고 곡물이 이리 멸시를 받다니… 이대로라면 땅을 모조리 엎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차라리 손해가 덜 할지도 모르는 일이겠다. 헤르안은 고상하게도 천박한 말을 입에 담아다 뱉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명했다. 시선이 향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레온은 대외적으로는 유망하고, 신망받고 있지.

 

 

 헤르안은 눈동자를 굴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훑어냈다. 일종의 검사다. 밀리온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경솔하다. 전권을 위임한 것은 나이지만…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어. 뒤를 돌아보려 하지 않으니 소작료가 치솟기만 하지.

 

 

 계산을 마치면 저울에 올린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것이지. 기우는 것은 순식간이다. 말판에 올라간 말은 두 개고, 가벼운 것은 자리를 지키기 힘드니 쓸모를 다 했다. 헤르안은 쓸모없는 것을 고작 정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이 일을 잘 처리한다면 네가 레온의 뒤를 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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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리온은 다시 구두 끝을 내려다보았다. 흐르고 터져 나온 것은 웅덩이를 만들어 암적으로 얼룩지지 않았던 곳이 선홍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점차 세력을 넓혀가는 것이 끝에 닿으려 하면 황급히 발을 물렸다. 그 중심에 엎어져 널브러진 것을 보았다. 적색과 녹색은 그 길이 정반대로 나뉜 것이라, 보색이 어지러운 무늬를 만들어 뒤섞인 것에 시선을 두기에는 눈이 피로했다. 한쪽으로 물드는 것이 나을 것이다, 밀리온은 그리 결론 내렸으므로 아직 쥐고 있는 날붙이의 끝으로 그것을 밀었다. 뒤집어 굴렸다. 온전한 적색이 되거든 조금 나았다. 미련 없이 날붙이를 웅덩이에 떨어뜨렸다. 장관이었다.

 

 수면 앞에 선 것은 모두 그 모습을 비치기 마련이라, 이미 색을 가진 것은 비치는 것을 곧이곧대로 보이지 못했으므로 밀리온은 상상해야만 했다. 색을 덮어씌웠다. 찰나에 푸른색이 스쳤다. 마음 가는 대로 만년필을 휘두르거나 스스럼없이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던 시절이 함께 스쳤다. 초록이 그것을 덮어내면 푸른 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무너진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밀리온은 한발 앞선다. 초록을 잃고 널브러진 것이 아직 유일한 초록색이 남아있음을 본다. 이질감이 드는 것은 떼어내야만 했다. 밀리온은 기꺼이 몸을 굽혔다. 한때 떨어지지 않는 부속품처럼 빛을 낸 녹빛 귀걸이를 구해낸다. 얼룩지지 않은 자락으로 붉은 것을 닦아내면 변치 않는 빛을 낸다. 저 웅덩이가 그랬듯 이 또한 자신을 비춘다. 덮어씌우지 않아도 온통 녹빛이다.

 

 생은 보잘것없다, 밀리온은 생각한다. 숨죽이고 사는 것은 변함이 없었으나 차라리 지금은 제 몸 하나 편히 뉠 곳이 있고 굶주리지도 않으니 더 낫다. 걸음 떼어낸 곳이 무너지고 있다 하여 어떨까,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해내거든 계속해 디딜 수 있는 계단이 지어졌다.

 

 밀리온은 제 귀에 구해낸 것을 끼운다. 붉은 흔적이 남았으나 이미 얼룩진 것에 얼룩 하나 추가한들 달라질 것이 없다.

 

 

 그 정도면 되는 일이다.

 

 

밀리온은 뒤돌았다. 선홍색은 빛이 거두어지면 암적으로 변모했다. 그것이 발자국을 만들어냈다.